
괴물영화와 재난영화는 장르적 개성이 너무나 강하여 SF영화라는 넓은 범주 안에 넣기 곤란하다. 두 장르 모두 장르적 공식이 확립되었기에, 장르적 공식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장르팬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다. 이 장르적 공식이라는 것이 설령 뻔하다 하더라도, 그 장르의 영화를 보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장르적 공식만 따라서는 안 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더라도, 영화를 보는 이는 언제나 새로운 감각을 맛보길 기대하면서 영화를 보게 되고, 새로움이 없다면 영화에 혹평을 던지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괴물영화와 재난영화는 가장 보수적인 영화팬들이 가장 진보적인 영상을 기대하면서 보게 되는 장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여름 한국 영화계에 나타난 두 영화 <차우>와 <해운대> 중 전자는 장르적 공식을 무시하고 감독의 유머감각으로 영화를 도배하여 이제는 괴물영화라는 장르명을 붙이기 아까운 영화가 되었다.(*) 그렇다면 <해운대>는 어떠한가.
(*) 필자는 영화 <차우>에 굉장히 부정적입니다. 리뷰는 이쪽.
본 포스팅은 영화 <해운대>의 리뷰로서, <해운대>의 스포일링을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치명적인 스포일링은 피하였으나,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느린 시작에서 오는 아쉬움
재난영화 하면 많은 사람들이 <투모로우>를 떠올린다. (그리고 곧 개봉할 <2012>를 기억하는 사람도 생길 테고.) 아무래도 <투모로우>의 재난 중에 해일이 포함되다 보니 <해운대>는 해일이 메인이자 유일한 재난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투모로우>랑 비교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투모로우>를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래도 <해운대>는 꽤나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투모로우>의 재난은 빙하가 갈라지는 첫 장면이 4분 30초, 도쿄에 우박이 떨어져 경찰관이 머리에 우박을 맞는 장면이 11분 30초 정도에 나온다. 그리고 26분부터 토네이도가 도시를 습격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 뒤로는 쉴 틈 없이 재난이 이어진다.2)
반면에 <해운대>의 재난은 재난의 예고라 할 수 있는 장면이 몇 없고, 본격적으로 해일이 나오는 것은 영화 시작 후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서부터이다.(*)
자연의 힘에 굴복하는 인간의 모습이 재난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임을 감안하면, <해운대>의 그것은 확실히 나오는 타이밍은 늦으면서 총 상영시간 대비 비중이 낮은 편이다. <투모로우>와 같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해일을 기대하고 간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며, 해일이 늦게 나온다는 것을 알고 가더라도 아쉬운 맛이 없지 않다.
(*) 사실 <딥 임팩트>를 생각해보면 굳이 재난 장면이 빠르고 많아야 재밌는 재난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시작한 뒤로는?
<차우> 역시 메인 몬스터인 '도스팡고거대 멧돼지'의 등장은 꽤 느린 편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보기 싫은, 억지웃음을 유도하는 장면들이 기다린 관객을 불만족시켰다. 다행스럽게도, <해운대>는 <차우>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한 흔적이 보인다.
일단 해일이 몰아치기 시작하자, 배 하나 뒤집고 시작해서 해운대 백사장, 다리, 해운대 앞 동네가 물바다가 된다. 도쿄나 상해 같은 잘 모르는 동네가 물바다가 되는 것과 달리, 필자가 지난 2월에 밥도 먹었던 건물이 해일에 무너지는 걸 보니 참 기분이 신기하더라. 해운대라는 동네를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해운대나 부산이라는 장소의 특성 덕분에 재난 장면이 주는 공포감은 배가 된다.
재난 장면은 위에서 언급한 <투모로우>에 비하면 짧은 편인데, '쓰나미'라는 것이 여진을 생각하더라도 영화를 꽉 채울 만큼 오래 일어나는 재난이 아니므로 아쉽지만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과학적 이유를 따라서 재난 장면이 짧은 건지 아닌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품질은 꽤 만족스러웠다. 다만 액션 장면이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맘에 드는 장면들, 맘에 안 차는 장면들
예고편에도 나오는 장면인데, 연희(하지원)가 만식(설경구)의 손을 잡고 부두를 달리는 장면이 참 좋았다. 재난이 시작된다는 하나의 세레모니로서 훌륭했달까? 해운대의 피서객들이 단체로 뛰는 장면도 재난영화로서 꼭 필요한 장면이었지만, 메인 캐릭터 둘이 그렇게 달리는 장면이 정말 맘에 들었다.
그리고 해운대 골목에 물이 차고 애자(insulator)가 물에 잠기면서 사람들이 감전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 가장 가시적으로 보이는 장면이라 인상적이더라.
배우들의 어색한 부산 사투리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아쉬운 장면도 여럿 있다. 우선 박중훈 씨가 교수이자 아버지라는 캐릭터 때문에 진지한 장면이 많은 편인데, 몇몇 장면은 진지함의 방향이 필자의 생각과 안 맞는 건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특히 'I'm your father 내가 니 애비다 내가 네 아빠야.' 장면은 버즈 라이트이어 스타워즈가 떠올라서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사실 이건 해운대 제작진의 잘못이라기보단 스타워즈가 너무 유명해서겠지만.)
이유진(엄정화)와 김휘(박중훈)의 화해 장면 같은 감동 장면도 꽤 억지스러다. 부드럽게 진행하다가 감동 장면에서 급하게 멈췄다가 다시 진행하는 느낌. 그다지 편하진 않다.

CG나 재난영화를 다루는 방식 같은 부분에서 다듬어야 할 요소는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동네를 배경으로 한 재난 영화가 나와줘서 고맙다. 기대 이상의 재미라서 더 고맙고.
애국심 마케팅이네, CG가 부족하네 말이 많은데, 이 정도면 실험적으로 시도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본다. 조만간 한 번 더 보러 가야겠다.
부산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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