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P.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1> 2009/10/09 00:00 by SilverRuin


  <아컴*1) 호러>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으스스한 도시 아컴에 들어간 조사자들이 힘을 합쳐 몬스터를 물리치고 이세계와 연결된 문을 봉인하며 고대 신의 부활을 막는 협력 게임이다. 스케일 대단한 게임 만들기로 유명한 FFG사에서 나온 <아컴 호러> 시리즈는 <아컴 호러 확장 : 더니치 호러>, <아컴 호러 확장 : 인스머스 호러> 등 총 여섯 개의 확장이 나온, 명실상부한 '협력 게임의 대표 주자'이다.
  게임 이름의 '아컴'에서 알 수 있듯이, <아컴 호러>는 SF공포 소설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의 여러 소설에 나타나는,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을 보드게임화한 것이다. 필자는 러브크래프트를 알았기에 <아컴 호러>를 재밌게 즐겼다기보단, <아컴 호러>를 더욱 재밌게 즐기고자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읽는 독자에 해당한다.

  *1) 보드게임계에서는 <아캄 호러>라는 명칭을 사용하나, 본 포스팅에서는 <러브크래프트 전집>에 사용된 표기법을 기준으로 삼았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 H. P. 러브크래프트

  스스로를 공포물이라 칭하는 작품 중에 단순한 놀래키기나 피가 튀는 고어만 가지고 공포라 우기는 작품이 얼마나 많았던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위에서 러브크래프트가 말한,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전달하고자 한다.
  데이곤, 니알라토텝, 크툴루, 요그-소토스, 아자토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하였고 그의 소설에 반복하여 나오지만, 그 정체는 '뭔가 굉장하고 굉장하며 굉장한 존재.' 이상의 객관성을 얻기 어려운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를 상징하며 우리를 덮치려 든다. 정보화 사회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너도 모르는 존재가 널 공포에 물들게 하리라.'라고 중얼거리는 그의 세계관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물론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결말이 불투명하고, 뭔가 확실하지 않은 것은 싫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싫은' 것들이, 사실은 내가 외면하는 공포일 것이다.

  한 편의 좀비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나 숨죽이고 읽는 재미가 매력적인 <인스머스의 그림자>, 러브크래트의 홍보대사(!)라 할 수 있는 크툴루에 관한 이야기 <크툴루의 부름>, 어둠의 마법이 휘몰아치는 마을의 공포를 다룬 <더니치 호러>등이 전집 1편에 수록된 소설들이다. 보드게임 <아컴 호러>에서 몇몇 고유명사만을 봐온, '러브크래프트 입문자'에 해당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1권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와 비슷한 시기에 전집 1,2권을 모두 읽은 형님이 2권에 수록된 <광기의 산맥>을 읽으면 이 내용이 정리가 된다고 하셨다.)

  <아컴 호러>가 사고 싶어졌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너무나 매력적인 세계관에 참가하여, 수많은 공포를 게임으로 경험하여 대리만족하고 싶다. 어서 2권을 읽어야겠다.

┗음반 리뷰 e.via [e.via a.k.a. happy e.vil] 2009/10/06 22:35 by SilverRuin



  음악 밸리를 돌던 중, e.via라는 여성 랩퍼가 음반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2NE1의 [Fire] 음반을 사려던 터라, 두 음반을 비교해볼 겸 e.via의 [e.via a.k.a. happy e.vil]도 같이 샀다. 결과는 e.via의 압승.

  택배 박스를 뜯었을 때 웬 DVD가 들어 있어서 당황한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음반 케이스가 평범한 DVD 케이스 같았던 것. 이때 같이 산 음반이 2NE1의 [Fire], Drunken Tiger의 [Feel Ghood Muzik - the 8th Wonder] 등 '모두' 비표준 케이스 음반이어서 살짝 좌절했다. (게다가 Thanks to도 읽기 어려었다-_-;)

  별다른 정보탐색 없이 음반을 사서 혹시 속은 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진짜로 만족스러운 음반이었다. 같이 산 2NE1의 음반에 실망이 컸던 것도 있지만, 이 음반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Tr.2 <해도 돼? [Skit]>
  Tr.3 <오빠! Rap 해도 돼? [Radio Edit Version]>
  Tr.12 <오빠! 나 해도 돼? [XXX Version]>

  2,3번 트랙이 하나로 이어지고, 그 둘을 붙인 약간 다른 버전이 12번 트랙이다.
  힙합씬이 소위 '까고 까이는' 곳이다 보니, 그러한 모습을 비꼬려는 제목일까? '오빠'로 통일되는 '모든 사람'에게 '랩을 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곡으로 일단 제목에서 느껴지는 풍자에서 한 번 미소 짓고, 생각보다 괜찮은 랩핑에 한 번 더 만족한다. 일단 음반의 첫 곡으로서 아쉽지 않은 실력발휘를 해준 곡.
  3번 트랙은 어디에서 들어도 괜찮지만, 12번 곡은 약간은 '그렇고 그런' 곡이니 주의하시길.


  Tr.4 <일기장 [Motiphie Edition]>
  Tr.14 <일기장 [90's POP Edition]>

  빗소리와 피아노 소리로 시작하는 차분하면서도 어둡지 않은 곡으로, 새로 산 일기장에 아끼던 펜으로 일기를 쓰면서 떠난 사람을 그리는 곡. 슬픔을 참으려 해도 겉으로 나오는 눈물이 일기장을 적신다는 가사가 맘에 든다. Verse 2의 가사도 주목할만하다. 4번 트랙이 원곡이고 14번 트랙은 좀 더 90년대 풍으로 리믹스한 것 같은데, 필자는 14번 트랙에 별 다섯 개를 주겠다.


  Tr.5 <너무 피곤해>

  <일기장>의 감수성 바톤을 이어받는 신나고 밝은 분위기의 곡. 곧 방송 활동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곡이나 14번 트랙으로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14번 트랙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곡.


  Tr.6 <2nd>

  '당신의 세컨드로라도 남아 있을게요.'라는, 필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가사의 곡. 박진영의 <난 여자가 있는데>에 오마쥬로 바치는 곡이라고 하는데, 정말 필자의 연애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가사라서 좋아하지 않는다. (skit보다 더 안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Tr.8 <Hey! [Original Version]>
  Tr.13 <Hey! [Radio Edit Version]>

  <오빠! Rap 해도 돼?>에서 이어진다고 봐도 좋은 곡. 곡 내내 'Hey! 랩 해도 돼?'라는 가사가 나오고, Verse 3가 <오빠! Rap 해도 돼?>의 답가라 할 수 있다. Verse 2에서 e.via 특유의 - 겨우 음반 하나로 '특유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위험하겠지만 - 속사포 랩이 빛난다. 13번 트랙과 8번 트랙은 일부 가사만 약간 다른 정도인 것 같다.


  Tr.9 <과연 그럴까?>

  UMC, Tequila Addicted가 함께하여 단체곡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힙합 특유의 '까칠함'이 느껴지는 곡. Verse2가 끝날 때 들리는 'ㅎㅎ씨~발'이 아주 인상적이다. 필자는 UMC가 맡은 Verse 1이 가장 좋다.


  Tr.11 <손발이 오글오글>

  '왜 랩은 만날 멋져야 돼요?'라며 별 내용 없이 머릿속으로 흘려보내는 생각 같은 가사의 곡. 듣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곡이 끝날 때쯤 '이게 뭐야! 다시 할게요.'라는 e.via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앨범 부클릿 가사 마지막에는 '다시 하긴 뭘 다시 해'라고 적혀 있다.


  Tr.15 <1/10>

  재즈풍 비트에 (앞의 곡들보다는) 진지한 목소리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줘서 고맙고 행복하다고 노래한다. 방송 활동을 시작하는 e.via를 보고 '돈에 미친 디지'나 '아 제발.'같은 악플이 여럿 달리는 걸 보았는데, 그래도 한 사람의 아티스트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해보겠다면, 나는 응원해주고 싶다. (일단 까는 답 없는 음덕들 꼭 있다=_=)


  총평
  EP치곤 알찬 구성에 아티스트의 여러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이 있어서 맘에 드는 음반. 근데 시그내쳐 사운드 'My name is e.via'나 '안녕 내 이름은 e.via'가 남발되는 느낌이 있어서 아쉽다. 올해 산 음반 중 필자 맘에 든 음반 순위 상위권에 있으니 방송 활동도 성공하기를 기원해 본다.


  skit은 선호도가 큰 의미가 없어서 매기지 않았습니다.

┗영화 리뷰 <에볼루션 (2001)> : 비듬 샴푸 광고 영화 2009/10/02 19:57 by SilverRuin



   얼마 전에 과학 밸리에서 '나는 진화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관련 글 : 꼬깔님의 '당연히 전 진화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태를 보면서 영화 <에볼루션>이 생각났는데, 기회가 닿아서 얼마 전에 <에볼루션>의 DVD를 살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본 <에볼루션>은 내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괴물 영화라기보단 코미디 영화에 가까운 영화였다. <프릭스>가 괴물 영화와 코미디 영화의 균형을 잘 맞춘 영화라면 <에볼루션>은 저예산 느낌을 팍팍 풍기면서 괴물은 적어도 개그는 최대한 살린단 느낌이었다.
  그래도 '순식간에 진화하는 외계 생명체'라는 독특한 컨셉이 가져오는 재미는 유효했다. 진화란 것이 수많은 방향성을 지니다 보니 - 그것의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 상상력이 맘껏 발휘된 새로운 생명체를 보는 재미가 있다. (그 생명체들이 '괴물'로서의 역할을 거의 못한다는 점은 괴물 영화를 기대했고 괴물 영화 팬인 나로선 유감이었지만.) 만약 이 컨셉으로 다시 영화를 만들 기회가 된다면, 본격 '진화 괴물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텐데 말이다.
  외계 생명체들이 셀린에 약하고 불을 오히려 좋아한다는 설정은 과학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들 뿐더러, 너무 작위적이라서 주인공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악수가 아니었나 싶다. 하긴, 클라이막스에나 나오는 이러한 설정을 알 때쯤이면 이미 개그 코드에 익숙해졌을 테니 상관없으려나?

  잔인한 장면도 없고 유머는 (조금 과한 것도 같지만) 즐기기 충분한, 무난하게 한 번 볼만한 영화. 근데 괴물 영화는 기대하지 마세요.

┗영화 리뷰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 : 오라, 죽음이여 2009/10/02 19:07 by SilverRuin


  먼저 영화를 보시지 않을 분들을 위한 노 스포일링 요약정리
 - 내용이 이어지진 않지만, 기존 시리즈를 보아야 영화 이해가 쉬운 편입니다. (그렇지만 기존 시리즈를 단 한 편도 안 본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는, 각 작품이 옵니버스 방식의 시리즈임은 여전합니다.)
 - 볼 때는 스포일링인 줄 전혀 모르지만, 4편을 먼저 보고 1~3편을 보면 '아 그거 스포였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 기존의 FD 시리즈보다 잔혹한 장면의 표현이 강한 편입니다. 주의해주세요.
 - '탐폰'이 뭔지 알고 가시면 더욱 재밌습니다.

 *이 아래에서부터 <Final Destination> 시리즈 1,2,3편의 내용 누설은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포함되었으나 4편의 내용누설은 최대한 걸러낸 4편 리뷰가 시작됩니다.


 
Memento mori
  '당신도 언젠간 죽을 것임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라틴어 표현

  당신은 어릴 적에 '삼단 논법'을 어떻게 배웠는지 기억나는가?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와 '인간은 모두 죽는다. 라는 두 문장이 결합하여,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낸다. 논리적으로 두 명제가 결합하여 논리적 정합성이 일치하는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삼단 논법을 배울 때,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간은 모두 죽는다.'라는 명제를 사용한다. 이는 이 명제가 절대로 옳은 참, 수학으로 치면 공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간, 동물, 생물은 언젠간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은 죽음을 맞이하는 이에게는 때로는 경건한 것이어서,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유명한 구성원인 동시에 쉽게 친해지거나 말을 걸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많은 영화에서 '죽음'을 수많은 방식으로 다뤄왔지만, 영화마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Final Destination> 시리즈는 그 '죽음'에 접근하는 방법이 가장 독특한 영화로, 시리즈 1편이 2000년에 개봉한,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영화 시리즈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죽음을 '경건'하게 다룬다. 환자의 죽음은 '슬픔'이고, 동료의 죽음은 '분노'이며, 무고한 사람의 죽음은 '악의 소행'이자 '정의감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FD의 죽음은, 인간 내면에 언제나 존재하는 순수한 '공포' 그 자체이고, 죽음이 당신을 죽이기로 정했다면 당신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규칙이다. (소설 <죽음의 중지>의 죽음과 FD의 '죽음'을 겹쳐서 보면 재밌을 것이다.)
  어찌 보면 죽음을 너무 쉽고 가볍게 유희거리로 다룬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영화다. 그러나 그 어떤 문화 작품에서도 접하지 못한 방식으로 죽음에 접근하니 - FD는 괴물영화보다도 더 캐릭터의 죽음이 기대되는 영화 아닌가! - 관객은 오직 이 시리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이 시리즈를 사랑하는 것이다.

  매너리즘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시리즈는 언제나*1) 다음과 같은 플롯을 따라 진행된다.
  1. 대형 참사가 일어나 수많은 사상자가 난다.
  2. 주인공은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에 그 참사를 '보고' 약간명의 사람을 구한다.
  3.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참사에서 죽었어야 할 순서대로 죽기 시작하고, 그 죽음의 방식이 주인공에게 예시나 암시 등의 방법으로 보인다.
  4. 주인공 일행은 '죽음이 계획대로 사람을 죽이려는 시도.'를 막으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5. 마침내 죽음의 계획을 막아내고 주인공은 살게 된다. (6. 그래도 다 죽긴 죽는다.)
  *1) 물론 시리즈의 작품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놀라울 만큼 '전형적으로' 진행되는 시리즈임은 사실이다.

  10년(!)씩이나 시리즈가 계속되면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거나 매너리즘에 빠져서 혹평을 받을 만도 한데, 이 시리즈는 3편, 4편을 오더라도 시리즈의 매력은 그대로 갖추면서 항상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해주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4편의 메가폰은 다시 2편의 감독인 데이비드 엘리스(David Richard Ellis)가 잡았다. 1편이 '죽음은 다시 온다. 그것도 예술적으로.'라는 키 아이디어를 잘 살려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면, 2편은 '대형 참사는 화려하게, 죽음은 예술적으로, 그것도 조금씩 조금씩 표현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 1편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전개된다.

  필자는 1,3편보다 2편의 깔끔함이 더 좋았는데, 4편에서는 역시나 2편에서 봤던 특징들이 여기저기 다시 나타난다. 특히 아무것도 아닌 암시와 장치들로 관객 맘 잔뜩 졸이다가 죽지 않고 지나가나 싶었지만, 결국 끝에 허무하게 사람이 죽게 되는 씬을 보면, 잔뜩 긴장한 마음을 놓았더니 끝에 가서 철렁! 그때의 감각은 소름 돋는 매력이 느껴진다.

  <쏘우> 등 '본격 고어 쇼'라 할 만한 영화가 흥행해서일까?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여 온' FD 시리즈보다 전보다 한층 사람의 '시체'를 표현하는데 능숙해졌다. 전작들보다 '낮'이나 '밝은 곳'에서 죽는 사람이 많은 이번 시리즈는 피와 살이 쉴 새 없이 스크린에 튀어 오르니 비위가 약한 분들은 주의해 주시길.

  그리고 시리즈 팬들이라면 환호할 만한 소식 한 가지. 영화가 시작할 때 - 모터 레이스 경기장 씬이 끝나고 나온다. -  영화 제목과 함께 나오는 오프닝 스텝롤은 X-ray 풍의 장면들로, 여러 사람이 - 물론 보이는 건 뼈뿐 - 여러 방식으로 죽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죽음들은 모두 기존 FD시리즈의 '죽음'들이니, 시리즈 팬이라면 기뻐하며 보아도 좋다.

  기존 시리즈보다 - 관객에게도 주인공에게도 - '암시'가 좀 더 확실하고 깔끔해졌으며, 피가 조금 더 튀는 것 같으면서 화면이 깔끔해져 1편과 비교해보면 정말 '용이 된' 이번 작품도, 캐릭터의 죽음을 통해 재미를 보는 인간 내면의 변태성을 훌륭히 만족시켜줬다. 5편이 기대된다.



여기서부터는 영화 내용에 관한 잡담입니다. (스포 있습니다.)

  • 오프닝 스텝롤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4편을 보기 전에 아직 못 봤던 1편을 후다닥 보길 정말 잘했어요.
  • 또 최종 생존자가 없는 것은 유감입니다. 1편에서 살아남고 2편에서 죽은 그 아가씨나, 2편 마지막에 살아남는 커플 외에는 정말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규칙의 절대성 면에서는 만족스럽지만요.
  • 생각해보면 쇼핑몰의 사람들은 주인공 덕분에 '죽음을 피한' 건데, 이걸로 또 FD를 찍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 그런데 3편의 축제 사고씬도 그렇고 4편의 (일어나진 않았지만) 쇼핑몰 화재도 그렇고, 주요 캐릭터와 관계없는 사람들도 자꾸 죽는 것 같아서 신경쓰입니다.
  • 모터 레이스 경기장을 나와서 다들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타이어가 날아오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예고편에도 나왔던 장면이지만 다시 한 번 섬뜩했어요.
  • 견인차 불 쇼는 간단한 방식이지만 FD의 개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 돌을 던지고 놀던 아이들은 자기 어머니를 죽인 돌이 자기들이 던진 돌이라는 걸 알까요?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헌트 바지벗어 우쮸쮸쮸 (물론 벗었으면 맨살이 빨려 들어가서 더 빨리 죽었을 것입니다.)
  • 에스칼레이터 장면은 정말 최고였어요.
  • 영화 보는데 극장에서 사고가 나는 건 기분이 미묘했습니다.
  • 안전제일. 하지 말란 건 하지 말고 지키란 건 좀 지키자.

히라야마 유메아키 (平山 夢明) <남의 일 (他人事)> 2009/09/30 20:52 by SilverRuin



   인터넷에서 이런 소설*1)을 읽은 적이 있다.
  의대생 한 명이 있다. 그는 한 소녀의 성을 사려고 했으나, 그 소녀가 화장실에서 사고로 죽어 버렸다. 사회적 위신과 체면 등 때문에 이 일을 경찰에 맡길 수 없었던 의대생은, 소녀의 유체를 그 자리에서 완전히 분해하여, 완전히 해결하고, 유유히 모텔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모텔 주인은 몰래 카메라를 보기 시작한다.

  처음에 저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의대생이 사람의 시체를 '해체'하는 것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그 글은, 스플래터 무비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의대생에게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혀를 차는 한편, 의대생이 모든 난관을 해결했을 때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서 숨이 멎는다.

  *1) 어딘가에서 상을 받은 소설이었던 것 같다.

  하리야마 유메아키의 <남의 일>을 읽기 시작할 때, 나는 저 의대생에 관한 소설과 같은, 피가 튀고 일상에서 시도해서는 안 되는 잔혹한 일에 독자가 몰입하며, 그 결말이 씁쓸함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기대했다. 단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은 지금,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감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열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피와 살점이 튀는 - 혹은 튈 것이 예견되는 -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피와 살을 튀기는 방식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모든 이야기가 다른 목적, 다른 방식으로 서술된다.

  피 흘리는 가족을 지켜보는 피를 손에 대기 싫은 사람의 이야기 <남의 일>, 자신의 히키코모리 자식을 죽이려는 부부의 이야기 <자식 해체>, 피 칠갑 소녀의 이야기 <어머니와 톱니바퀴>, 새끼 고양이를 갑자기 맡게 된 여성이 피를 흘리는 <새끼 고양이와 천연가스>는 책 표지의 소녀처럼 피비린내가 강한 작품들이다. 네 작품 모두 책의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 속이 안 좋아지고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피비린내 사이로 흘러나오는 인간이란 존재의 썩은 냄새는 산뜻한 - 혹은 땀내나는 - 지하철에서 편히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집은 독자(=필자)가 기대한 이야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기분은 더더욱 안 좋아진다.

  딸이 유괴된 미식가 가족이 나오는 <딱 한 입에…>, 정년이 지난 사람은 사람이 아닌 세상이 배경인 <정년 기일>, 새끼 고양이가 사람 손가락을 물어오며 시작되는 <전서묘>는 이야기의 결말을 뻔히 보여주지만, 그 결말이 진실이 아니길 바라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정년 기일>과 <전서묘>를 읽고 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떠올리게 되는데, 두 작품은 <나무>의 상상력을 폭력이란 코드로 변주해놓았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불편함을 떨칠 수 없다.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소녀의 이야기 <포비아 소환>, 큐티 하니를 알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크레이지 하니>, 역겨운 맛이 남는 <다윈과 베트남 수박>은 <정년 기일>과 <전서묘>에서 발휘한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진행되는 이야기들이다. 이쯤 되면 처음의 피비린내는 많이 가시고, 정신적인 역겨움이 더욱 진해지게 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만 남기는 <쓴 바비큐>, 소설이 아닌 기록물을 모은 <레지레는 무서워>는 가장 이질적인 두 이야기로, 전자는 이 책에 있는 모든 이야기 중 가장 미스터리하면서 가장 공포스럽다. <레지레는 무서워>는 사람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이야기로, 어이없으면서도 가장 화가 나는 결말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 <인간 실격>은 <남의 일>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 죽마고우의 이야기 <호랑이 발바닥은 소음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책을 마무리함에 있어, 이 두 이야기는 독자의 영혼을 완전히 뽑아놓고 나서는 그저 공허히 방황하게 만든다. 그 허무함에 씁슬함이 더해져 힘들다.

  이 책의 열네 이야기가 위와 같은 순서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위와 같은 분류는 '억지스럽다'할 수 있을 정도로, 각각의 이야기가 개성이 강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몇몇 이야기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묘사가 이해하기 난해하거나 이야기 진행 속도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다.)

  피와 살이 찢이기면서 새어 나오는 물질적인 역겨움과, 나와 동종인 인간이란 존재가 보여주는 정신적인 역겨움이 혼재하는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리 기분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독서의 목적이 마음의 양식을 쌓는 거라는 소리는 개 풀 씹어먹을 때 같이 씹어 먹어버리고, 함께 기분이 우울해질 자신이 있다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추천하는 이야기는 <자식 해체>, <쓴 바비큐>, <레저레는 무서워>, <인간 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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