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여고생 밴드 하면 이상하게 <스윙 걸즈>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에 <린다 린다>가 떠오른다. 그런데 전자는 밴드라기보단 악단이고, 후자는 내가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집에 있는 음반들을 찾아보더라도 '여고생 밴드'와 비슷한 이미지는 '소녀시대'나 '윤하'의 음반 정도였다. 88년생부터 91년생까지 있으니 현직 여고생은 아니나, 앨범 재킷이 스쿨룩인 걸 보면 SCANDAL은 여고생 밴드라는 아이덴티티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같았다. 그런데 그에 어울리는 음악이란 어떤 건지 나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음반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 그나마 '한스밴드'나 '윤하'의 음악을 예상하면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우와, 완전 틀렸다. 수록곡 중 가장 긴 곡인 <SCANDAL BABY>를 맨 앞에 배치하고, 내 취향으로 중무장한 곡들이 앨범 전체에 퍼져 있다. 처음 두 곡을 듣고 나서야 '여고생 밴드'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SCANDAL을 그저 '아티스트'로 생각하고 접하니 음악의 느낌이 달라졌달까? 그렇지만 여고생이란 장점을 내버린 건 아니다. 음악적인 느낌에서 소녀의 상큼함을 내세우기보단, 가사에서 소녀의 감수성이나 생각들을 읊는 것은 지금 아니면 못 하는 것일 테고, 또 내 취향의 가사이기도 해서 맘에 들었다.
이미지를 떠나서, 음악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1~3번 트랙 <SCANDAL BABY>와 <소녀S>, <DOLL>은 소리가 강렬한 편인데, 그 강렬함 속에서 혹시나 걱정했던 미숙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4번 트랙 <사랑 모양>에서는 힘을 살짝 빼고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1~4번 트랙 모두 나쁘지 않았지만 - 특히 4번 트랙의 가사가 좋았지만 - 개인적으론 5번 트랙 이후의 곡들에 너 높은 점수를 준다. (특히 4~6번 트랙은 이 앨범의 삼총사라 부르고 싶을 정도.)
5번 트랙 <꿈꾸는 날개>는 제목부터가 끌렸다. (이건 철저한 개인취향이지만) 필자는 꿈을 노래하는 노래를 좋아한다. <꿈꾸는 날개>의 꿈은 로맨스 쪽의 꿈에 가깝다고 보지만, 그래도 노래 마지막에 '꿈꾸는 날개를 타고, 꿈꾸는 시절이 지나도'가 반복되는 부분을 듣고 있으면 절로 힘이 솟는다.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해준달까.
신나는 멜로디와 비트로 중무장한 6번 트랙 <그대가 맴돌아>는 <소녀S>와 함께 가장 '소녀다운' 가사가 잘 나타난데다, 듣는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곡 구성이 인상적이다. 7번 트랙 <스페이스 레인저>는 <그대가 맴돌아>에서 받은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서 달린다는 느낌의 곡으로, '앞으로 가자!'라는 곡이나 눈이 가는 제목에서나 SCANDAL이 가진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한 곡으로 보였다. 1절은 길고 2절은 짧게 하여 곡이 하고 싶은 말로 마지막에 달려가는 그 구성도 좋았고. 다만, 전체적으로 고음으로 구성된 곡이라서 들을 때 약간 부담이 간다.
7번 트랙과 비교되어 힘이 빠져버리는 8번 트랙 <Ring!Ring!Ring!>을 지나 9번 트랙 <환상 나이트>를 들을 때쯤, 갑자기 모닝구 무스메가 떠올랐다. 모닝구 무스메의 정확히 어떤 곡과 이미지가 겹쳤는지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10번 트랙의 <그대와 밤과 눈물>은 어째서인지 노래를 듣기 전부터 끌렸다. 제목에서 매력을 느꼈고, 지금은 그 제목을 메신저 대화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곡은 평범하지만, 때로는 그 평범함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오직 나에게만 특별한 그런 곡이랄까? 지극히 개인 취향으로
<하나만>은 시작하자마자 '이건 아니메 오프닝 같은 느낌인데!'라고 생각해버렸다.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은 가사인데, 곡 구성이 전형적인 아니메용 구성이라서 기분이 미묘해지는 곡이다. 듣기에는 편한데 진중하게 듣기 어렵다.
여고생이란 이미지가 가장 정확하게 대입되는 12번 트랙 <사쿠라 굿바이>. 졸업과 함께 볼 수 없게 된 사람을 그리는 노래 같은데, 곡 전체가 힘이 넘치다 보니 굉장히 강렬한 후렴구 부분이 오히려 묻히는 것이 조금 아쉽다. 헤어짐 앞에 새로움을 찾는 모습이 보기 좋은 곡이지만, 역시 조금 아쉽다.
데뷔 전 미국 투어를 떠나기 전에 완성한 마지막 트랙 <아지랑이 -album mix->. 라이너 노츠에서 '지금의 SCANDAL의 라이브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분신 같은 곡.>이라 소개하였는데, 그 말에 공감이 가는 것이 앞의 열두 곡에서 조금씩 알게 된 SCANDAL의 강점이 고루 녹아 있는 곡이라 느껴졌다. 'SCANDAL이 어떤 아티스트야?'라고 물으면 가장 먼저 들어보라고 해주고 싶은 곡이다.
처음 들을 때는 소리가 정리가 안 되었단 인상을 받았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그것이 오히려 이들의 '개성'이라 느껴졌다. 사실 정리가 안 되었다는 느낌은 '이것은 계산된 소리가 아니다.'라는 쪽의 인상에 가까워서, 듣기에 크게 불편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SCANDAL은 언제나 힘이 넘치는 밴드입니다!'라는 목소리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넘치는 힘이 약간 차분했으면 좋았을 부분에서도 발휘된 게 아쉽다.
메인 보컬을 두고, 다른 멤버들도 필요하다면 보컬로 나서기 때문에 (분위기가 비슷한 곡이 많아서) 자칫 잘못하면 식상하게 느껴질 법한 곡들도 잘 살아났고, 가사도 나쁘지 않았다. (필자가 일어에 무지할 뿐.)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위드 블로그에서 준 첫 선물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합격점 :)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