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팬도럼> : 가시나무왕 + 무한의 리바이어스 2009/10/23 18:19 by SilverRuin



  핏빛 시리즈로 유명한 <쏘우>와 비슷한 느낌의 포스터를 가져왔지만, <팬도럼>은 백색보단 흑색을 강조하는 영화입니다. 제2의 지구라 불러도 좋을 행성으로 몇백 년에 걸친 항해를 하는 우주선. 임무교대시간이 되어 깨어나 보니 우주선은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고, 게다가 미지의 인간형 생명체가 인간을 사냥하고 다니는 사냥터가 되어 있었죠.
  여기서 단순하게 그 괴물들을 피해서 원자로를 재가동하기 위한 주인공 바우어 상병의 모험을 그린다면 <에이리언>과 같은 SF 공포 영화와 차별화되지 못하였겠지만, <팬도럼>에서는 우주 승무원에게 자주 나타나는 착란 증상인 '팬도럼'을 다루면서 원자로 가동을 위해 행동하는 주인공이 괴물과 겪는 물리적 갈등, 주인공과 음성 채팅(?!)을 하는 상관 페이튼 중위가 겪는 팬도럼을 통한 정신적 갈등 양쪽을 모두 주무릅니다.

  '팬도럼'은 '이 항해에 미래는 없다.'라고 믿어버리는 착란 증세의 일종으로, 영화 속에서는 항해 책임자가 주로 겪는 증상이라 설명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봤을 때는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라고 믿게 되는 착란 증세로 이해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장기수면의 부작용으로 기억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 판에 다른 승무원의 시체가 널려 있고 또 그 시체나 사람을 사냥하는 괴물이 있습니다.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데 실패하면 항해에 미래는 없지만 재가동하더라도 그 괴물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항해를 이어나갈지 막막합니다. 그래요, 차라리 이 우주선을 포기하고 소형 우주선으로 항해를 계속하거나, 아니면 수면캡슐 채로 나가버리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런, 당신도 이미 '팬도럼'에 걸렸습니다.
  이와 같은 사고를 작중 캐릭터들도 하게 됩니다. 항해에 책임이 있는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몇백 년짜리 항해를 하는 이 우주선의 탑승객이라면 - 물론 탑승객 대부분은 자고 있거나 그 괴물들에게 죽었습니다만 - 위와 같은 '팬도럼'을 겪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하게 보면 원자로를 재가동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지만, 물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남는 '팬도럼'이라는 정신적 문제가 이 영화의 더 큰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죠.

   그래서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사랑하는 원자로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바우어 상병과 나디아, 만, 리랜드는 물리적 갈등을 통해 <팬도럼>의 세계가 얼마나 절망적인지 보여주며, 영화의 외면적 재미 요소인 액션과 공포를 보여줍니다. 반대로, 바우어 상병의 성공만을 기다리는 페이튼 중위와 자신의 구해준 페이튼 중위가 팬도럼 증상을 보인다고 밀어 붙이면서 오히려 자신의 더욱 광기를 내보이는 갤로 상병은 영화의 핵심적 주제인 '정신적 공포감'을 보여줍니다.

  *아래의 이미지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영화의 결말과 핵심 내용에 관한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지구는 사라졌고 이 우주선에 남은 사람은 '최후의 인류'가 되어 미래판 노아의 방주를 타고 있는데 그 노아의 방주에 사탄의 자식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 노아의 방주는 꿈의 목적지에 착륙하여 바다 속에 가라앉은 상태였다는 결말.
  그냥 '어이없다.'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영화가 힘들게 끌고 온 '정신적 공포감'이 너무 아쉽습니다. '괴물'에 대한 설명도 추측만 있을 뿐 완전하지 않고 - 물론 6만 명 중 2,000명도 안 되는 사람만 살아남았고, 괴생명체가 집단적으로 우주선 바깥이 아닌 내부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 등이 그를 증명해준다고 봅니다. - 중력 제어 장치가 심하게 잘 돌아가서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요.) 새로운 정착지가 될 행성의 중력은 느끼지도 못하는 점을 지적하려는 건 아닙니다. (아 지적해버렸군요…….)

  '팬도럼' 증상이라는 자기 내면의 광기를 바우어 상병도 페이튼 중위도 모두 겪게 됩니다. 그러나 바우어 상병은 그 광기를 바다라는 희망을 통해 잡아내었지만, 페이튼 중위는 자아분열로 나타나서 다른 한쪽을 말소시켜버리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하죠. 바우어 상병은 초기증세였고 페이튼 중위는 중증이었다고 하나, 결국 세상은 Love&Peace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만화 <가시나무 왕>과 애니메이션 <무한의 리바이어스>의 장점만을 가져다 섞어놓았는데, 영화는 보고 나서 약간의 생각은 남지만, 그 생각을 건설적으로 확대하기 쉽지 않고 또 보는 동안 공포와 스릴이 만족스럽지 않을 만큼만 느껴지니,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가시나무 왕>을 좋아하신다면 꽤 볼만하겠지만, <에이리언 4> 느낌의 영화를 기대하신다면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단 볼만해요. 신기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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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whitewnd 2009/10/23 22:36 # 삭제 답글

    끙... 저 피칠갑한 주인공들은 -ㅅ-! 게다가 저 포스터는! <- 고어씬 알러지ㅠㅠ;

    그러고보니 괴물은 인간이었나요? 흠...-_-++ 결말이 궁금하군요!
  • SilverRuin 2009/10/23 22:55 #

    결말을 안 보셨다니 역시 덧글로도 말 안 하는 쪽이 좋겠죠?
  • whitewnd 2009/10/24 18:48 # 삭제

    사실~ 전 영화보는것보다 스포일러 보는게 더 좋은데. 댓글로 나와버리면 다른분들이 으앍! 하실것 같아서..그냥 참을래요 ㅋㅋ;
  • 원생군 2009/10/24 00:43 # 답글

    응..., 꿈도 희망도 없다는 코즈믹 호러의 느낌이 나네요... 이런 류는 남기는 것은 있지만 좋아하진 않아서...
  • SilverRuin 2009/10/24 05:40 #

    꿈도 희망도 없는 영화가 어디 한두편이겠냐만, 이 영화는 조금 더 각별합니다 :)
  • 도리 2009/10/29 00:10 # 답글

    미묘하게... 안보려고 했었는데, 이상하게-_- 끌리게 만드는 글인데요[...]...
    물론 <가시나무왕>도, <무한의 리바이어스>도 본 적은 없습니다만;;;
  • SilverRuin 2009/10/29 00:50 #

    왜 제 주변 사람들은 제 글을 읽고 '그거 이상하게 끌린다.'고 자꾸 그럴까요-_-; [도리님이 세 번째...]
  • 스노 2009/11/01 01:51 # 삭제 답글

    난 이거 되게 재미나게 봤는데ㅋ 스릴감, 결말등 다 만족였심~ 영화보고나서 뭔가 좀 이상한 부분들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ㅋ
  • SilverRuin 2009/11/01 02:22 #

    딱히 이상한 부분이 있었던가요?ㅎㅎ
    저도 결말은 대만족!
  • KITE 2009/11/19 09:59 # 삭제 답글

    저도 가시나무왕 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말고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군요. 일단 가시나무왕이 널리 알려진 만화가 아니라...
  • SilverRuin 2009/11/19 16:30 #

    상당히 마이너하고 아는 사람만 아는 만화긴 하죠..
    극장판 애니메이션화 한다는 루머는 루머였던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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