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야마 유메아키 (平山 夢明) <남의 일 (他人事)> 2009/09/30 20:52 by SilverRuin



   인터넷에서 이런 소설*1)을 읽은 적이 있다.
  의대생 한 명이 있다. 그는 한 소녀의 성을 사려고 했으나, 그 소녀가 화장실에서 사고로 죽어 버렸다. 사회적 위신과 체면 등 때문에 이 일을 경찰에 맡길 수 없었던 의대생은, 소녀의 유체를 그 자리에서 완전히 분해하여, 완전히 해결하고, 유유히 모텔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모텔 주인은 몰래 카메라를 보기 시작한다.

  처음에 저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의대생이 사람의 시체를 '해체'하는 것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그 글은, 스플래터 무비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의대생에게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혀를 차는 한편, 의대생이 모든 난관을 해결했을 때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서 숨이 멎는다.

  *1) 어딘가에서 상을 받은 소설이었던 것 같다.

  하리야마 유메아키의 <남의 일>을 읽기 시작할 때, 나는 저 의대생에 관한 소설과 같은, 피가 튀고 일상에서 시도해서는 안 되는 잔혹한 일에 독자가 몰입하며, 그 결말이 씁쓸함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기대했다. 단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은 지금,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감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열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피와 살점이 튀는 - 혹은 튈 것이 예견되는 -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피와 살을 튀기는 방식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모든 이야기가 다른 목적, 다른 방식으로 서술된다.

  피 흘리는 가족을 지켜보는 피를 손에 대기 싫은 사람의 이야기 <남의 일>, 자신의 히키코모리 자식을 죽이려는 부부의 이야기 <자식 해체>, 피 칠갑 소녀의 이야기 <어머니와 톱니바퀴>, 새끼 고양이를 갑자기 맡게 된 여성이 피를 흘리는 <새끼 고양이와 천연가스>는 책 표지의 소녀처럼 피비린내가 강한 작품들이다. 네 작품 모두 책의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 속이 안 좋아지고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피비린내 사이로 흘러나오는 인간이란 존재의 썩은 냄새는 산뜻한 - 혹은 땀내나는 - 지하철에서 편히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집은 독자(=필자)가 기대한 이야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기분은 더더욱 안 좋아진다.

  딸이 유괴된 미식가 가족이 나오는 <딱 한 입에…>, 정년이 지난 사람은 사람이 아닌 세상이 배경인 <정년 기일>, 새끼 고양이가 사람 손가락을 물어오며 시작되는 <전서묘>는 이야기의 결말을 뻔히 보여주지만, 그 결말이 진실이 아니길 바라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정년 기일>과 <전서묘>를 읽고 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떠올리게 되는데, 두 작품은 <나무>의 상상력을 폭력이란 코드로 변주해놓았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불편함을 떨칠 수 없다.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소녀의 이야기 <포비아 소환>, 큐티 하니를 알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크레이지 하니>, 역겨운 맛이 남는 <다윈과 베트남 수박>은 <정년 기일>과 <전서묘>에서 발휘한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진행되는 이야기들이다. 이쯤 되면 처음의 피비린내는 많이 가시고, 정신적인 역겨움이 더욱 진해지게 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만 남기는 <쓴 바비큐>, 소설이 아닌 기록물을 모은 <레지레는 무서워>는 가장 이질적인 두 이야기로, 전자는 이 책에 있는 모든 이야기 중 가장 미스터리하면서 가장 공포스럽다. <레지레는 무서워>는 사람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이야기로, 어이없으면서도 가장 화가 나는 결말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 <인간 실격>은 <남의 일>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 죽마고우의 이야기 <호랑이 발바닥은 소음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책을 마무리함에 있어, 이 두 이야기는 독자의 영혼을 완전히 뽑아놓고 나서는 그저 공허히 방황하게 만든다. 그 허무함에 씁슬함이 더해져 힘들다.

  이 책의 열네 이야기가 위와 같은 순서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위와 같은 분류는 '억지스럽다'할 수 있을 정도로, 각각의 이야기가 개성이 강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몇몇 이야기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묘사가 이해하기 난해하거나 이야기 진행 속도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다.)

  피와 살이 찢이기면서 새어 나오는 물질적인 역겨움과, 나와 동종인 인간이란 존재가 보여주는 정신적인 역겨움이 혼재하는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리 기분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독서의 목적이 마음의 양식을 쌓는 거라는 소리는 개 풀 씹어먹을 때 같이 씹어 먹어버리고, 함께 기분이 우울해질 자신이 있다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추천하는 이야기는 <자식 해체>, <쓴 바비큐>, <레저레는 무서워>, <인간 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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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도리 2009/09/30 21:54 # 답글

    주석에 달린 저 글은 대체 어떤 글이었을 지 궁금하네요. 이 글도 궁금하고... 역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 SilverRuin 2009/09/30 23:41 #

    주석에 달린 글은 몇 년 전에 웹에 크게 돌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 원생군 2009/09/30 23:53 # 답글

    마치 1년전에 본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를 보는 듯하네요. 물론 그 영화는 희망적으로 끝났지만 그

    영화가 묘사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타락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느낌이라서요...
  • SilverRuin 2009/10/02 17:13 #

    <눈먼 자들의 도시>도 좋은 영화지요. 책은 더더욱 뛰어났고요.
  • SilverRuin 2009/10/02 21:33 #

    첨언입니다만, 이 책은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인간의 내면성을 고발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런 내면성이 극대화된 이야기를 통해서 '공포'혹은 '기괴함'을 전달하는 게 주목적인 소설입니다.
  • 베리 2009/09/30 23:57 # 답글

    주석에 달린 글은 예전에 읽은 '한국공포문학단편선' 중에 '모텔 탈출기' 같습니다. 저도 결말이 꽤 충격적이라 제일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었거든요. 그 소설이 원래 웹에 돌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어서 같은 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SilverRuin 2009/10/02 17:13 #

    맞는 것 같네요.
    웹에 타이핑본 같은 것이 돌았고 제가 그것을 본 모양입니다.
  • 도리 2009/10/02 20:07 #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D 한번 봐야겠군요...
  • whitewnd 2009/10/01 11:08 # 삭제 답글

    역시 표지대로이군요...;;;
    저는 읽을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더러운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라!!! ㅠㅠ

    하지만. 성의있게 쓰여진 리뷰 감사합니다. 이런 리뷰야말로 마음의 양식이 되는 듯 하네요 ......
  • SilverRuin 2009/10/02 17:14 #

    접하고서 기분이 나빠진다면 접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ㅡ'
  • sorstalansag_i 2009/10/01 11:49 # 답글

    헉, 표지부터 무서워;; 채플 들으면서(?!) 보다가 구토감 들었어ㅠ 상상만 해도 속 뒤집혀;;
  • SilverRuin 2009/10/02 17:14 #

    제목만으로도 무서운 게 있지만, 이야기를 세세히 읽고 있으면 정말 기분이;
  • presario 2009/10/01 13:42 # 답글

    어우, 진짜 깜짝 놀랐어요ㅎㅎ
    SilverRuin 님 아이디를 타고 넘어오자마자 호러픽쳐가!!!

    그치만 굉장히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담고계신 블로그가 인상깊습니다 :)
    필력도 부럽고, 이 다양한 기호와 열의도 부럽습니다요

    잘보고 가요~
  • SilverRuin 2009/10/02 17:14 #

    다르게 말하면 너무 잡다하다고도 하지만요?^^;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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