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리뷰 [2009 MBC 대학가요제] 2009/11/07 18:36 by SilverRuin


  대학가요제 음반을 사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방사수도 못해놓고 왜 음반을 샀느냐고 물으면, 지름신이 왔다고밖에 답할 수 없다. 정말로 갑자기 보여서 갑자기 샀다. 뭐, 맘에 드는 곡도 있었으니까 후회는 없다.


Tr.1 <괜찮아 (언제까지나 널 사랑할 건 아니었으니까)> by 겨울모기

   처음에 듣고서 살짝 어이가 없었던 곡. 남자가 너무 이기적이랄지, 자기 위주라고 할지, 아니면 그냥 바보인 건지 알 수 없었달까. 사랑이란 감정에 아직 미숙한 대학생을 잘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잘 표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신선함 하나는 발군.
  겨울모기가 한예종에서 온 참가팀이었던 것 같은데, 한예종 화이팅.


Tr.3 <지금이야> by Stunnaz

  우리 연세학우의 곡이지만,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신날 대로 신난 상황에서 들으면 좋았을 것 같은 곡인데 순서가 안 좋았달까. 김영득 씨의 <One Night Fiesta> 다음에 나왔다면 아주 다른 반응이 나왔을 거로 생각한다.
  곡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아주 약간 부족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항상 3번 트랙을 들을 때쯤, 내가 '프로 아티스트'의 음악을 기준으로 삼고서 '대학생'들의 참가곡을 듣는 것 같아서 약간 반성하게 된다.
  그래도 후반부의 's, t, u double n a z 네가 즐겨야 할 때 바로 지금이지.'는 만족스럽다.


Tr.4 <Fall in U> by 폴라로이드

  듣자마자 자우림의 <애인 발견!!>을 떠올린 사람이 나 하나 뿐은 아닐 것이다. 재즈풍 멜로디에 읊조리는 자기 마음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2분 26초쯤에 곡 분위기를 살짝 바꿔주는 게 일품. 그러나 <애인 발견!!>의 신나는 분위기가 자꾸 생각나서 좀 미안하다.


Tr.6 <Stand Up> by 퍼플 시티

  무게감 있는 여성 보컬의 목소리가 돋보이는 곡. 모든 사람을 응원하는 곡답게 신나고 힘이 넘친다.


Tr.7 <없네> by 유선준

  이상하게 계속해서 듣게 되는 곡. <군계무학>이 더 좋아서 산 음반인데, 요즘에는 이 곡을 더 자주 듣게 된다.
'없었네 그 어디에도 난 절대 못 봤네 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이리도 보고 싶은데 그렇게 떠나가 버리면 나는 어쩌나요'
  저 후렴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뭔가 에리는 걸 보면, 이건 '내 맘에 드는' 나를 위한 노래인 것 같다.


Tr.8 <좋겠다> by 지익환

  솔직히 처음에는 손발이 살짝 오글라드는(…) 곡이었지만, 몇 번 듣고 나니 그 '순수함'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최근 들어 정말 이렇게 '순수한' 곡을 들은 일이 얼마 없긴 했다.


Tr.9 <꿈으로 간다> by 유니콘 밴드

  <군계무학>, <없네>와 함꼐 가장 맘에 든 세 곡 중 하나. 자기만의 세계에서 꿈을 노래하는 듯한 모습이, 아무래도 전공이 전공인 필자로선 매력적으로 보일(들릴?) 수밖에 없었다. 듣는 동안은 흥겨우면서, 듣고 나서 찾아오는 차분함이 매력적. 쉽게 말해 완전 필자 취향의 곡이다.


Tr.10 <African Charlie> by 황유정

  곡이 좋은 건 인정하지만, 필자의 취향이 아니라서 그다지 안 듣는 곡. 그래서 선호도도 낮다. 그래도 곡이 좋다는 사실은 (취향을 떠나서) 인정할 수 있다.


Tr.12 <군계무학 (鷄群無鶴)> by 이대 나온 여자

  닭들 사이에 학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학 가요제 방송을 뒤늦게 봤을 때는 이 곡은 닭들 사이의 유일한 학이었다. 개성 넘치는 곡이었고, 2000년대를 살아가는 소위 '개새끼 20대'들의 심정을 솔직하게 노래해준 게 고마웠다. 노래방에 들어왔으려나?


Tr.13 <One Night Fiesta> by 김영득

  마지막에 분위기도 띄웠고, 비슷한 장르의 참가곡이었던 <지금이야>보다는 약간 더 나았고, 들으면 들을수록 필자 취향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수상권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에 오빠밴드와 함께 분위기를 잘 띄운 게 컸던 것 같다.


  이 음반은 대학 가요제가 음악계에서 어떤 위상을 갖는지 조금도 모르는 필자로선에겐 '맘에 드는 곡이 많아서 사게 된 컴필레이션 앨범'에 불과하다.  혹시 '대학가요제는 어쩌구 저쩌구' 하실 분들은 멀리 가주세요.
  만약 필자가 시상을 한다면 대상은 <군계무학>, 금상은 <African Charlie>, 은상은 <꿈으로 간다>, 동상은 <없네>.




┗음반 리뷰 Kinetic Flow [G-days] 2009/11/07 17:51 by SilverRuin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가수는 아니지만, 전 키네틱 플로우를 참 좋아합니다. 그저 Buddha Baby라는 이유만으로 샀던 [Challenge 4DA Change]에서 다른 곡은 몰라도 <몽환의 숲> 하나만은 목숨 걸고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곡이 뭐냐고 물으면 '많이 듣는 건 <K>지만 좋아하는 건 <몽환의 숲>.'이라고 답합니다. (<몽환의 숲>은 제 생각보다 많은 분이 아는 곡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그들이 [Delicious Days]로 돌아왔을 땐 당연히 기뻤습니다. 특히 <Sugar Rain>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G-days]로 돌아왔습니다. U.L.T.는 군대에 갔고 비도만 남은 키네틱이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힙플에서 급하게 구매했습니다. (친구가 힙플에서만 판다고 해서 힙플에서 샀지만, 나중에 보니 핫트랙스에도 있더군요.)

  그런데 이 아쉬움은 무엇일까요. 아티스트라면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 최고겠지요.그렇지만, 지금까지의 키네틱과는 다른 'G-funk'를 들고온 비도승우의 음악이 저는 얼마나 맘에 들었나 잘 모르겠습니다.

  노래가 별로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지가 바뀌었기에 생기는 위화감이 너무 강하달까요. 듣고 있으면 때때로 '이런 색깔도 좋은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이전의 키네틱이 더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Tr.1 Ego [Intro]

 비도 혼자 활동하며 객원 보컬과 MC와 함께 활동하는 새로운 키네틱이 던지는 출사표. 곡 전체의 분위기 - 아마 이게 G-funk겠죠 - 와 하나가 되어 '자, 이제 길을 갑니다.'


 Tr.2 One Way Ticket

 오직 G-funk로 가는 편도 티켓만이 남았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출사표가 이어지는 느낌이 나더군요. 비도의 랩 느낌은 그대로이나 음악이 달라지니 확실히 곡 자체가 달라진다는 걸 2번 트랙에 와서야 느꼈습니다.


 Tr.3 <This is G> with AG, kingpin

  저는 음악 장르를 구분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 '이런 음악을 G-funk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도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나는 랩도 좋고, 약간은 중독적인 후렴구나 킹핀의 랩도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아 이런 것도 좋구나.'라고 생각하며 키네틱의 2집을 기다리게 됩니다.


 Tr.4 <What is Right, What is Wrong?> with Dia(해경)

  제목에서부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노래입니다. 한 명의 팬으로서 아티스트의 활동에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쉬움을 느끼는 제가 잘 하는 건지 생각하게 됩니다. 뭐, 그가 '꼴리는 대로' 해주고, 저도 그의 음악이 계속 듣고 싶으니, 그가 옳다고 믿으려고요.


  지금까지의 스타일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새로워진 키네틱에 적응하기 어려운 앨범입니다. 그런 저에게 던지는 것 같은 가사가 많아서 들으면서 양심이 찔리는 앨범이에요. 2집 작업이 잘되고, 2집이 나올 때쯤에는 열린 마음으로 그의 2집을 즐길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음반 리뷰 SCANDAL [BEST★SCANDAL] [위드블로그] 2009/11/07 16:56 by SilverRuin



  일본 여고생 밴드 하면 이상하게 <스윙 걸즈>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에 <린다 린다>가 떠오른다. 그런데 전자는 밴드라기보단 악단이고, 후자는 내가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집에 있는 음반들을 찾아보더라도 '여고생 밴드'와 비슷한 이미지는 '소녀시대'나 '윤하'의 음반 정도였다. 88년생부터 91년생까지 있으니 현직 여고생은 아니나, 앨범 재킷이 스쿨룩인 걸 보면 SCANDAL은 여고생 밴드라는 아이덴티티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같았다. 그런데 그에 어울리는 음악이란 어떤 건지 나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음반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 그나마 '한스밴드'나 '윤하'의 음악을 예상하면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우와, 완전 틀렸다. 수록곡 중 가장 긴 곡인 <SCANDAL BABY>를 맨 앞에 배치하고, 내 취향으로 중무장한 곡들이 앨범 전체에 퍼져 있다. 처음 두 곡을 듣고 나서야 '여고생 밴드'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SCANDAL을 그저 '아티스트'로 생각하고 접하니 음악의 느낌이 달라졌달까? 그렇지만 여고생이란 장점을 내버린 건 아니다. 음악적인 느낌에서 소녀의 상큼함을 내세우기보단, 가사에서 소녀의 감수성이나 생각들을 읊는 것은 지금 아니면 못 하는 것일 테고, 또 내 취향의 가사이기도 해서 맘에 들었다.

  이미지를 떠나서, 음악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1~3번 트랙 <SCANDAL BABY>와 <소녀S>, <DOLL>은 소리가 강렬한 편인데, 그 강렬함 속에서 혹시나 걱정했던 미숙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4번 트랙 <사랑 모양>에서는 힘을 살짝 빼고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1~4번 트랙 모두 나쁘지 않았지만 - 특히 4번 트랙의 가사가 좋았지만 - 개인적으론 5번 트랙 이후의 곡들에 너 높은 점수를 준다. (특히 4~6번 트랙은 이 앨범의 삼총사라 부르고 싶을 정도.)

  5번 트랙 <꿈꾸는 날개>는 제목부터가 끌렸다. (이건 철저한 개인취향이지만) 필자는 꿈을 노래하는 노래를 좋아한다. <꿈꾸는 날개>의 꿈은 로맨스 쪽의 꿈에 가깝다고 보지만, 그래도 노래 마지막에 '꿈꾸는 날개를 타고, 꿈꾸는 시절이 지나도'가 반복되는 부분을 듣고 있으면 절로 힘이 솟는다.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해준달까.

  신나는 멜로디와 비트로 중무장한 6번 트랙 <그대가 맴돌아>는 <소녀S>와 함께 가장 '소녀다운' 가사가 잘 나타난데다, 듣는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곡 구성이 인상적이다. 7번 트랙 <스페이스 레인저>는 <그대가 맴돌아>에서 받은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서 달린다는 느낌의 곡으로, '앞으로 가자!'라는 곡이나 눈이 가는 제목에서나 SCANDAL이 가진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한 곡으로 보였다. 1절은 길고 2절은 짧게 하여 곡이 하고 싶은 말로 마지막에 달려가는 그 구성도 좋았고. 다만, 전체적으로 고음으로 구성된 곡이라서 들을 때 약간 부담이 간다.

  7번 트랙과 비교되어 힘이 빠져버리는 8번 트랙 <Ring!Ring!Ring!>을 지나 9번 트랙 <환상 나이트>를 들을 때쯤, 갑자기 모닝구 무스메가 떠올랐다. 모닝구 무스메의 정확히 어떤 곡과 이미지가 겹쳤는지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10번 트랙의 <그대와 밤과 눈물>은 어째서인지 노래를 듣기 전부터 끌렸다. 제목에서 매력을 느꼈고, 지금은 그 제목을 메신저 대화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곡은 평범하지만, 때로는 그 평범함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오직 나에게만 특별한 그런 곡이랄까? 지극히 개인 취향으로

  <하나만>은 시작하자마자 '이건 아니메 오프닝 같은 느낌인데!'라고 생각해버렸다.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은 가사인데, 곡 구성이 전형적인 아니메용 구성이라서 기분이 미묘해지는 곡이다. 듣기에는 편한데 진중하게 듣기 어렵다.

  여고생이란 이미지가 가장 정확하게 대입되는 12번 트랙 <사쿠라 굿바이>. 졸업과 함께 볼 수 없게 된 사람을 그리는 노래 같은데, 곡 전체가 힘이 넘치다 보니 굉장히 강렬한 후렴구 부분이 오히려 묻히는 것이 조금 아쉽다. 헤어짐 앞에 새로움을 찾는 모습이 보기 좋은 곡이지만, 역시 조금 아쉽다.

  데뷔 전 미국 투어를 떠나기 전에 완성한 마지막 트랙 <아지랑이 -album mix->. 라이너 노츠에서 '지금의 SCANDAL의 라이브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분신 같은 곡.>이라 소개하였는데, 그 말에 공감이 가는 것이 앞의 열두 곡에서 조금씩 알게 된 SCANDAL의 강점이 고루 녹아 있는 곡이라 느껴졌다. 'SCANDAL이 어떤 아티스트야?'라고 물으면 가장 먼저 들어보라고 해주고 싶은 곡이다.


  처음 들을 때는 소리가 정리가 안 되었단 인상을 받았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그것이 오히려 이들의 '개성'이라 느껴졌다. 사실 정리가 안 되었다는 느낌은 '이것은 계산된 소리가 아니다.'라는 쪽의 인상에 가까워서, 듣기에 크게 불편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SCANDAL은 언제나 힘이 넘치는 밴드입니다!'라는 목소리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넘치는 힘이 약간 차분했으면 좋았을 부분에서도 발휘된 게 아쉽다.
  메인 보컬을 두고, 다른 멤버들도 필요하다면 보컬로 나서기 때문에 (분위기가 비슷한 곡이 많아서) 자칫 잘못하면 식상하게 느껴질 법한 곡들도 잘 살아났고, 가사도 나쁘지 않았다. (필자가 일어에 무지할 뿐.)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위드 블로그에서 준 첫 선물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합격점 :)



 




이슈성 글 과정은 위법이지만 법은 합헌입니다. 2009/10/29 21:17 by SilverRuin

고스톱 : 탄은 썼지만 판돈은 유효합니다.
카탄 : 주사위는 조작했지만 승점은 유용합니다.
티츄 : 용으로 먹은 점수를 우리팀에게 줬지만 승점은 유효합니다.
아그리콜라 : 밥은 안 먹었지만 승점은 유효합니다.
도미니언 : 속주를 7원에 샀지만 승점은 유효합니다.
파워그리드 : 턴오더는 안 지켰지만 도시 수는 유효합니다.


에라이 t(^_^t)

┗영화 리뷰 <팬도럼> : 가시나무왕 + 무한의 리바이어스 2009/10/23 18:19 by SilverRuin



  핏빛 시리즈로 유명한 <쏘우>와 비슷한 느낌의 포스터를 가져왔지만, <팬도럼>은 백색보단 흑색을 강조하는 영화입니다. 제2의 지구라 불러도 좋을 행성으로 몇백 년에 걸친 항해를 하는 우주선. 임무교대시간이 되어 깨어나 보니 우주선은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고, 게다가 미지의 인간형 생명체가 인간을 사냥하고 다니는 사냥터가 되어 있었죠.
  여기서 단순하게 그 괴물들을 피해서 원자로를 재가동하기 위한 주인공 바우어 상병의 모험을 그린다면 <에이리언>과 같은 SF 공포 영화와 차별화되지 못하였겠지만, <팬도럼>에서는 우주 승무원에게 자주 나타나는 착란 증상인 '팬도럼'을 다루면서 원자로 가동을 위해 행동하는 주인공이 괴물과 겪는 물리적 갈등, 주인공과 음성 채팅(?!)을 하는 상관 페이튼 중위가 겪는 팬도럼을 통한 정신적 갈등 양쪽을 모두 주무릅니다.

  '팬도럼'은 '이 항해에 미래는 없다.'라고 믿어버리는 착란 증세의 일종으로, 영화 속에서는 항해 책임자가 주로 겪는 증상이라 설명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봤을 때는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라고 믿게 되는 착란 증세로 이해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장기수면의 부작용으로 기억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 판에 다른 승무원의 시체가 널려 있고 또 그 시체나 사람을 사냥하는 괴물이 있습니다.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데 실패하면 항해에 미래는 없지만 재가동하더라도 그 괴물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항해를 이어나갈지 막막합니다. 그래요, 차라리 이 우주선을 포기하고 소형 우주선으로 항해를 계속하거나, 아니면 수면캡슐 채로 나가버리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런, 당신도 이미 '팬도럼'에 걸렸습니다.
  이와 같은 사고를 작중 캐릭터들도 하게 됩니다. 항해에 책임이 있는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몇백 년짜리 항해를 하는 이 우주선의 탑승객이라면 - 물론 탑승객 대부분은 자고 있거나 그 괴물들에게 죽었습니다만 - 위와 같은 '팬도럼'을 겪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하게 보면 원자로를 재가동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지만, 물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남는 '팬도럼'이라는 정신적 문제가 이 영화의 더 큰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죠.

   그래서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사랑하는 원자로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바우어 상병과 나디아, 만, 리랜드는 물리적 갈등을 통해 <팬도럼>의 세계가 얼마나 절망적인지 보여주며, 영화의 외면적 재미 요소인 액션과 공포를 보여줍니다. 반대로, 바우어 상병의 성공만을 기다리는 페이튼 중위와 자신의 구해준 페이튼 중위가 팬도럼 증상을 보인다고 밀어 붙이면서 오히려 자신의 더욱 광기를 내보이는 갤로 상병은 영화의 핵심적 주제인 '정신적 공포감'을 보여줍니다.

  *아래의 이미지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영화의 결말과 핵심 내용에 관한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지구는 사라졌고 이 우주선에 남은 사람은 '최후의 인류'가 되어 미래판 노아의 방주를 타고 있는데 그 노아의 방주에 사탄의 자식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 노아의 방주는 꿈의 목적지에 착륙하여 바다 속에 가라앉은 상태였다는 결말.
  그냥 '어이없다.'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영화가 힘들게 끌고 온 '정신적 공포감'이 너무 아쉽습니다. '괴물'에 대한 설명도 추측만 있을 뿐 완전하지 않고 - 물론 6만 명 중 2,000명도 안 되는 사람만 살아남았고, 괴생명체가 집단적으로 우주선 바깥이 아닌 내부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 등이 그를 증명해준다고 봅니다. - 중력 제어 장치가 심하게 잘 돌아가서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요.) 새로운 정착지가 될 행성의 중력은 느끼지도 못하는 점을 지적하려는 건 아닙니다. (아 지적해버렸군요…….)

  '팬도럼' 증상이라는 자기 내면의 광기를 바우어 상병도 페이튼 중위도 모두 겪게 됩니다. 그러나 바우어 상병은 그 광기를 바다라는 희망을 통해 잡아내었지만, 페이튼 중위는 자아분열로 나타나서 다른 한쪽을 말소시켜버리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하죠. 바우어 상병은 초기증세였고 페이튼 중위는 중증이었다고 하나, 결국 세상은 Love&Peace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만화 <가시나무 왕>과 애니메이션 <무한의 리바이어스>의 장점만을 가져다 섞어놓았는데, 영화는 보고 나서 약간의 생각은 남지만, 그 생각을 건설적으로 확대하기 쉽지 않고 또 보는 동안 공포와 스릴이 만족스럽지 않을 만큼만 느껴지니,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가시나무 왕>을 좋아하신다면 꽤 볼만하겠지만, <에이리언 4> 느낌의 영화를 기대하신다면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단 볼만해요. 신기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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